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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솔음입니다.

바깥은 계절이 엇갈리는 시기입니다. 따뜻함과 차가움이 번갈아 스며들고, 바람은 아직 방향을 정하지 못한 듯합니다. 모든 것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고 말하기에는 이른 나날입니다. ​모두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전해 드려야 할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만…… 어떤 것부터 꺼내야 할지 잠시 망설이게 됩니다. 아무래도 가장 먼저 설명해야 할 것은 지금의 상황이겠지요. 저를 비롯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채 꿈속에 갇혀 있던 몇몇 대원들이 어떻게 깨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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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끝내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삼현조의 지난 활동 이후, 사령부는 또 하나의 대대를 창설했습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 모아 ‘유리딱새’라는 이름을 붙였고, 그들에게 어떤 물건을 찾는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그들은 삼현조의 발길이 닿았던 스테이지 곳곳을 다시 밟으며 그 물건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한 끝에 저희는 긴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익히 알고 계신 각자의 쐐기가, 그 열쇠가 되어 준 겁니다.

깨어난 저희는 유리딱새 대대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합류해 임무를 수행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바깥에는 저희가 미처 찾아내지 못한 혼돈의 조각 하나가 남아 있었고, 그로 인해 세계는 계속해서 침식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존 대원들과 달리 특별한 능력이 없던 저희는 공방의 힘을 빌려, 각자의 쐐기를 유사한 기능을 가진 전용 아이템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참고로 제 전용 아이템은 촛농이 물방울처럼 흘러내리는 양초였습니다. 어떤 효과를 지녔을지 짐작이 가십니까? 언젠가 다른 대원들의 전용 아이템이나 능력에 관해서도 설명을 드릴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모두 함께 모인 자리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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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현조의 주적이었던 혼돈에 관해서도 설명이 필요하겠습니다. 고군분투 끝에 세 개의 조각을 정화하면서 혼돈은 이미 제 힘을 온전히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어떤 존재에 의해 마지막 조각을 포함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스스로를 지탱할 기반을 모두 잃은 혼돈은 더는 독립된 형태로 존재할 수 없었고, 어딘가에 기생하는 방식으로 연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선택된 숙주가 바로 제1 막 《친구의 사랑을 이어 주세요!》에 등장했던 미나였습니다. 혼돈은 미나의 몸을 빌려 간신히 존재를 이어 가고 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조우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 혼돈이 저희에게 마지막 조각을 없애 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모든 일을 마친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혼돈은 애초에 저희가 대신 조각을 찾아 주기를 바랐던 듯합니다. 불완전한 상태로 다른 괴이들과 힘을 겨루는 것은 지나치게 위험한 선택이었을 테니까요. 이후에 무엇을 도모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조각을 찾는다는 중간 단계까지는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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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은 저희가 이전에 한 번도 진입한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스테이지가 생겨났다는 사실과 그곳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곳은 카지노의 형식을 띠고 있었고, 사람의 영혼에 가치를 매겨 이를 게임에 사용할 수 있는 재화로 환산해 주는 구조였습니다. 여느 카지노와 마찬가지로 다량의 칩을 보유한 고객은 VIP로 분류되어 일반 플로어에서는 제공되지 않는 별도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서비스’란 전적으로 괴이의 관점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칩을 모두 잃고 파산에 이르면 영혼은 카지노에 종속됩니다. 이 스테이지는 그러한 규칙 아래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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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6 사단 제1 기 ‘흰수리 대대’가 작성한 스테이지 지침서를 바탕으로 탐사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VIP 전용 플로어에 들어서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겪은 실패는 대원들이 지닌 능력을 끌어내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결국 모두가 힘을 합쳐 카지노의 난관을 돌파했고, 마침내 목표했던 곳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조각을 손에 넣은 바로 그 순간, 세계가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깨어진 세상의 파편 사이로 금이 간 선이 번져 나갔고, 그 틈에서는 새하얀 빛이 흘러나왔습니다. 이어 현상보다 한 발 늦게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고, 검은 조각들이 흩어지며 빛이 사방으로 산란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정신이 산산이 부서질 것만 같은 감각이 밀려왔습니다. 크레오닉스와 이어져 있던 정신 자체가 완전히 분리될 것만 같던 순간, 알 수 없는 힘이 기체와의 연결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저희는 꿈속에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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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현조 활동 당시, 조각을 정화하기 위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십니까. 나무 사이로 얇은 햇살이 내리쬐던 천계의 평원은 아무것도 없는 어둠 그 자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특수한 능력을 지닌 대원들조차 편린을 엿보는 것이 전부인 공간이었습니다. 빛도, 냄새도, 소리도 없고, 시간조차 흐르지 않는 곳을 까마득하게 헤맨 끝에, 임무 중 실종되었던 대원을 그곳에서 길잡이로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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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눈에 익은 불상이 있는 곳으로 저희를 안내했습니다.​ 그 불상은 한때 조각을 정화하기 위한 장치로만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장치가 아니었습니다. 흰수리 대대의 전임이었으며, 삼현조의 장교였으며, 모든 길 잃은 자가 구제되기를 줄곧 바라 온 혼돈의 대적자가 불상의 모습으로 그곳에서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으로 혼돈의 소멸을 끌어안고 이 세계에 드리운 위협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런 그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 그것이 유리딱새 대대 대원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임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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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모든 일의 원흉이었던 혼돈은 대적자의 품에서 완전히 소멸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지옥과도 같았던 천계의 평원은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고, 그곳의 길잡이로 속박되어 있던 대원 역시 무사히 복귀했습니다. 상흔은 남겠지만 세계의 침식은 이제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을 것입니다. 길고 험난했던 여정에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여러분께 전할 수 있어 기쁩니다.​

이제 남은 이야기는, 저희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 이후의 일뿐입니다. 몇 가지 행정 절차를 기다리며 저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곡을 쓰고, 다른 누군가는 글을 쓰거나 백도어를 드나들며 세상에 감춰진 비밀을 파헤치게 되겠지요. 아직 정확히 정해진 것은 많지 않습니다만, 세계를 향한 가장 큰 위협이 사라진 지금, 적어도 예전처럼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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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한동안 여유를 가지며 그간의 일을 정리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여러분께 편지를 쓰는 것도 그 작업의 일환이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만족할 만한 매듭을 짓고 나면 그때는, 이번에야말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믿어 보려고 합니다. 영원히 실패로 남을 줄로만 알았던 우리의 미제 사건에도 이렇듯 마침표를 찍게 되었으니까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언젠가 찾아올 가능성을 믿기에는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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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했습니다. 부족한 저를 믿고 동료로서 의지해 주신 여러분이 계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선택을 함께했고, 때로는 같은 길을 바라보며 걷고, 때로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같은 목적을 향해 버텨 왔던 그 모든 순간이 아니었더라면 저희는 끝내 이곳까지 도달하지 못했을 겁니다. 결코 평탄한 길은 아니었지만, 저는 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이 꿈 같았던 이야기를 몇 번이고 곱씹으며, 천계의 평원에 다시 부는 평온한 바람이 여러분을 긴 잠에서 깨워 주기를 기다리겠습니다.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김솔음 드림

P.S. 이걸로 빚 갚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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